
토라포션 9 봐예쉐브(ויֵּש ב)
- 본문 범위: 창세기 37:10 ~ 40:23
-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봐예쉐브)
토라포션 9 봐예쉐브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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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예쉐브‘의 의미: 히브리어로 “그리고 그가 정착했다(and he settled)” 또는 “그가 앉았다(sit down)”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이 정착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 요셉은 총애받는 아들이었으며, 이는 예슈아께서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셨음을 생각할 때 비슷한 점이 있다. 많은 점에서 요셉은 예슈아를 예표한다. 히브리어로 요셉(Yosef)은 “그가 더할 것이다(he will add)”라는 의미를 가진다. 창세기 37장 4절에 따르면, 야곱이 다른 형제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을 형제들이 분명히 알았음을 알 수 있고 형들은 그를 미워하여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 미워하지 말라! : 우리는 다른 이들을 축복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늘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시거나 잘 되게 하실 때, 경쟁심이나 시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 더 번성하거나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야 하며, 마음을 겸손하게 지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시기심이 영적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늘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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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창세기 37장 5절에 따르면, 요셉이 꿈을 꾸고 형제들에게 이야기하자, 형들은 그를 더욱 미워하였다. 히브리어 원문은 요셉(Yosef)이 꿈을 꾸고 그의 형제들이 그를 yasaph (더욱, 심지어 더) 미워했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요셉의 이름이 무언가를 더 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흥미롭다. 형제들이 느낀 감정인 질투는 히브리어로 키나(Kina)라고 하며 형들의 질투와 시기는 결국 악해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 봐예쉐브라는 단어는 정착을 의미하며 평안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야곱이 정착하여 아들들을 낳고 생활이 안정적이 된 것 같아 보였으나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생활이 안정된 상태가 되고 일들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준비되어야 한다”
- 요셉과 예슈아 : 요셉처럼 예슈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받았으나, 형제들처럼 자신의 백성들에게 거절당하셨다 (요한복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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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꿈은 종종 반대에 부딪히므로 이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이 꿈을 보여주실 때, 누구와 나눌지 지혜를 구해야 하며, 특히 초기에 모든 사람이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 요셉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형들은 오히려 요셉을 위험으로 밀어 넣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서 옷(robe)을 벗겨졌는데, 히브리어로 “핌(pim)”이라고 하며, 이는 줄무늬(strips)를 의미한다. 예슈아께서도 요셉처럼 배신당하고 은에 팔렸으며, 그분의 옷이 십자가에서 벗겨지셨다. 인간의 배신은 우리에게 부여된 신성한 부르심을 취소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신실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께 집중한다면, 어떤 배신이 있더라도 우리의 신성한 운명을 막을 수 없음을 알라.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며, 실망감과 슬픔이 마음을 사로잡게 두면 스스로를 제한하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우리를 배신하거나 악한 일을 한 자들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람이 악하게 한 것을 하나님은 선하게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원리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반유대주의 운동과 어둠의 세력에도 적용되며,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 위에 축복을 풀어놓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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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팔려가 결국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노예가 되었을 때 요셉은 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은 그의 삶의 이 부분을 선하게 바꾸어 그를 영향력 있는 사람의 집에 두셨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에 불가능한 호의가 베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셉이 신실하게 모든 일을 하나님을 섬기듯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승진시키셨고, 보디발의 눈에 들어 호의를 얻게 하셨다. 성공의 위치에 올랐을 때에 유혹이 오지만 요셉은 하나님께 신실했기에 악을 거절하였다. 영적 전쟁은 실재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때 적의 공격도 있으므로 항상 예수님 안에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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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경외: 경외라는 단어, 영어의 ‘fear’와 달리, 히브리어 Yirat은 “보다(to se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 앞에 계심을 보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았기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죄를 숨길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신실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요셉처럼 예슈아께서도 죄에 저항하셨고, 거짓으로 고발당하셨으나 이에 대해 또다른 죄를 짓지 않으셨다. 경건한 인격은 비밀스러운 곳에서 증명된다. 여호와를 경외함(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함)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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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는 환경에 제한되지 않음 : 요셉은 아버지의 집, 구덩이, 보디발의 집, 감옥…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와 호의를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도 환경에 제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함을 믿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형통함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토라포션 개인묵상
– 요셉의 삶을 묵상항 : 예슈아와 많이 닮아있는 요셉. 아버지에게 보냄받아 형들에게 갔고 형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찢김을 당했다. 뱀의 후손인 미디안에 팔리게 되고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나 형들은 그가 요셉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고 함께 하시므로”의 삶! 형들에게 배신당하는 고통을 당하였어도 내적치유를 어떻게 한 것인지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아버지에게 형들의 행실을 고자질하거나 자신의 꿈을 눈치없이 아버지와 형들 앞에 떠들며 자랑했던 조금 모자른 모습과 전혀 다른 늠름함과 믿음직스러움, 지혜와 신실함으로 무장한 듯 보인다.
여호와께서 강권적으로 함께 하심때문인가, 요셉이 처절하게 하나님을 붙잡았기 때문인가. 여하튼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이 요셉이 어느 곳에 있든지 ‘형통’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영과 혼, 마음이 건강하다’ 쓴뿌리가 없기에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기에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당장 맡겨진 자리에 그저 최선을 다한다. 그 어떤 행위보다 속사람이 강건한 것이 열쇠인 것 같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먼저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그 외의 것을 향한 열심이 오히려 화를 자초할 것이다.
토라포션 8 : 봐이실라흐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