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라포션 8 봐이슐라흐 (וישלח)
- 본문 범위: 창세기 32:3~36:43
-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봐이슐라흐)
봐이슐라흐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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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쉴라흐(Vayishlach)’는 히브리어로 “그가 보냈다(he has sent)”는 의미이다. 야곱이 라반을 떠나 길을 갈 때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를 만났다. 히브리어에서는 천사들이 야곱을 ‘만났다’는 일반적인 표현 대신, ‘그에게 부딪혔다’ 또는 ‘걸려 넘어졌다’는 의미의 특별한 단어를 사용한다. 야곱은 천사들을 보고 “이것은 하나님의 진이다”라고 말하며 그 장소의 이름을 마하나임(Mahanaim)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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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에 전령들(messengers)을 보냈다. ‘말라킴’מַלְאָכִים은 ‘전령들(messengers)’ 또는 ‘보내진 자들(the sent ones)’을 의미하며, 또한 ‘천사들(angels)’을 의미하기도 한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보내진 존재이기에 ‘말라킴’이라 불리며, 이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 야곱의 성숙과 겸손 : 야곱은 에서와 헤어진 후 하란에서 약 20년을 보냈으며, 그동안 많은 축복과 함께 라반을 통해 겸손을 배우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야곱은 이전보다 훨씬 더 겸손하고 성숙해졌다. 주님 안에서 성장할 때 성숙뿐만 아니라 겸손도 함께 성장해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알면서도 마음을 겸손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야곱의 절박한 기도 : 곧 에서를 만나게 되는 야곱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절박하게 기도하였다. 라반이라는 큰 위험을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벗어나게 되자마자 에서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시험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찌보면 고난의 연속이다. 한 시험에서 다른 시험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서도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 자비와 전략 : 야곱은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을 찾았고, 천사들을 보며 하나님이 주변에 계심을 알고 격려를 받았다. 또한 시험에서 벗어날 전략을 구하였다. 야곱의 기도를 통해 자비를 구하면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전략을 세우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부드럽게 할 전략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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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냈다’의 의미: 야곱은 믿음으로 전령들을 보냈음을 상기시킨다. 야곱은 선물을 보내는 지혜로운 전략을 사용했는데, 선물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기적을 행한다. 우리는 사랑을 담은 선물이나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Yeshua)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화해시키기 위해 그분을 선물로 보내신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어려운 관계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도와 겸손이 화해를 위한 근간이 되는 것을 기억하고 , 에서와 야곱의 화해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도록 부르심 받은 존재임을 늘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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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 이 화해 이야기는 이스라엘 주변의 많은 이웃들이 이스라엘과 유대 민족을 미워하는 현실 속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화해의 사역을 수행하며,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아랍 친구들과 진실된 우정을 나누시는 이스라엘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믿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를 최우선에 두고, 진리를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일에 순종할 때 사랑과 화해의 영이 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해의 영으로 나아가며 서로 용서하고,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지지하는 동시에 이 땅에 사는 아랍인들, 특히 아랍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부르심을 인정해야 한다
-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 하나님은 야곱에게 더 이상 그의 이름이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어 성경은 “네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으므로 네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리라”고 하지만, 히브리어로는 “하나님과 더불어(Sarita with God)” 씨름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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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천사(가장 유력하게는 천사, 일부는 예수님으로 봄)와 씨름했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과 씨름했다는 것이다. 야곱은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말하며 매우 단호했고, 하나님을 붙들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약속, 능력, 도움이 필요했기에 하나님과 씨름했다. 이 씨름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며 고뇌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은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충실하셨기에 큰 승리를 얻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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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영광스러운 이야기: 토라 포션의 마지막 부분(34장, 35장)은 비극적이지만 영광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겜 사람들에게 디나가 강간당하자,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의 할례를 미끼로 복수하고 도시를 파괴했다. 야곱은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 절망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벧엘은 야곱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기도와 만남, 예배의 장소였다.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다른 민족들의 신을 섬기고 더렵혀졌던 모든 우상숭배의 흔적들을 제거할 것을 명하였다. 야곱은 “이제 순결의 때, 거룩함의 때, 삶을 재고할 때”라고 선포했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 다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야곱을 찾아오셔서 계속 번성하고, 땅을 상속받을 것이며,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토라포션 개인묵상
- 두려움에 대해서 : 두려움은 참으로 위험하면서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에 대해 보아도, 들어도 두려움을 선택하는 순간 영적 감각은 마비되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음에도 에서의 사람 400명에 무너졌다. 영적인 본질과 실체를 보지 못하면 ‘문제’ 자체에 함몰되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고 결국 내 소견에 옳은대로 일을 해결하려 들게 된다. 두려움은 조급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탓하게 만들고, 자기방어하게 만들고….온갖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나 역시 두려움에 매우 취약한 사람이다.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미리 끌어다가 염려하며 ‘범사 감사, 항상 기뻐함’, 무시 기도’와 상관없이 반응하여 죄를 짓게 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으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8, 개역개정/대한성서공회)
내 안에 드는 두려움은 내 스스로 이겨낼 수 없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안에 거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 나를 두려워하게 하는 그 요소들이 무엇인지 성령님 앞에 숨김없이, 낱낱이 아뢰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받아 저주가 아닌 생명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 겸손 :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이다. 내가 성경을 좀 더 알고, 마지막 때나 이스라엘에 대해 조금 아는 것이 교만으로 나를 이끌고 갈 때가 많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참 발 빠르게 그 교만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판단하고 낮게 여기게 하고 정죄와 비난, 분열의 조짐을 가져오는 선긋기로 나를 좌지우지한다. 야곱은 훈련을 통해 성숙하였지만 겸손하였다. 더 알고 훈련되는 것,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어떠하심을 더 깊이 경험하면 할수록 맺혀야 하는 열매는 겸손인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불편해하는 미성숙한 모습이 있음을 고백한다. 참 괴로운 일이다. 마음처럼 가볍게, 스스럼없이, 아무 편견없이 누군가를 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그것이 교만일 수 있기에 내 태도를 교정해야만 한다. 주의 은혜를 구한다. 야곱이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자비와 전략을 구한 것 처럼 나의 이 못난 모습을 불쌍히 여겨주시도록,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기쁜 태도인지 구체적으로 전략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토라포션 7 : 바예쪠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