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aying Hands – 손끝기도 피아노
초등학교 3학년 나이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할 수 있었다.
반주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찬양할 수있도록 받쳐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여겼고, 꽤 잘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반주자 생활(?)을 했었나보다.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는데 우리 엄마는 피아노 학원 다니던 딸이 그 당시 바이엘 책 앞에 붙어있던 피아노건반 종이를 바닥에 펼쳐놓고 연습하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피아노를 사주시면서 하나님께 교회 반주자로 사용해주시라고 기도를 하셨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피아노학원에서 4학년때까지 체르니 40번 중간을 치다가 만 실력으로 반주법도 따로 배우지 않고 지금까지 반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 엄마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사를 부어주시고 사용하신 것이라 믿는다. Glory to God!
예배를 돕는 역할을 넘어 나 자신도 반주 혹은 연주로 예배자로 서기를 원하는 갈망이 컸다.
내 연주에 내가 취해 피아노를 치는 목적을 잠시 잊어버릴 때 마다 두려운 마음에 주님께로 시선을 다시, 속히 돌린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반주자이고 싶다고 큰 소리를 쳤었지만, 이제 교회 밴드 세션들도 젊은 연주자나 전공자들로 채워지니 뜬금없는 위기감도 느껴지고 은퇴를 생각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매주일마다 든다.
아무튼 그러다가 문득 유튜브에 내 연주를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워낙 날고 기는 사람들, 너무나 많은 채널들이 있는데 나까지 뭘 보태.. 누가 듣는다고…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었는데..왠지 이번에는 며칠 생각하다가 바로 실행에 옮겨 버렸다.
사람들 안오면 어때. 나라도 기도할 때 틀어놓지 뭐. 다른 연주자들처럼 프로페셔널하게 할 수도 없으니 그냥 즉흥적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하자.
채널의 이름도 Praying Hands라고 한 이유도 그렇다. 손의 연주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영상을 올려놓고 보니 아주 뿌듯하다.
Shalom Jerusalem
Praying Hands가 처음 연주하는 곡으로 Paul Wilbur의 Shalom Jerusalem을 선택했다.
대학생 시절 귀에 꽂고 살았던 Hosanna Integrity의 음반 중 하나인데 그당시 HOSANNA 음반은 스케일도 워낙 크고 복음성가만 듣던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센세이셔널했기 때문에 테이프 사모으는 낙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때만해도 이 찬양이 예수님 태어나신 이스라엘 땅의 예루살렘에서 찬양집회 실활을 녹음하느라 곡도 아예 히브리 민요나 예루살렘을 주제로 하나보다 생각했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약속을 성경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고 나서 이 찬양을 들으니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다.
데릭프린스 목사님의 Why Israel에 따르면 크리스챤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1.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한복음 4:22/ 개역개정)
예수님, 사도들, 선지자들, 성경 자체가 모두 유대 민족을 통해 주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유대인이 없었다면 복음도, 구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민족은 유대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영적 빚을 지고 있고 이 빚을 갚는 가장 성경적인 방법 중 하나가 이스라엘을 위해 하는 중보기도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영적 책임임을 알아야 한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독특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역대상 17:21)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대상 17:20)이스라엘의 고유성은 하나님의 고유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직접 구속하시고 선택하신 유일한 민족이며, 신약에서 ‘이스라엘’은 77번 등장한다.
단 한 번도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언약…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창 17:7–8)
“그가 명령하신 말씀을 천 대까지 기억하셨으니” (시편 105:8–11)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조건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신 주권적 언약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철회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다.
이 언약을 부정하면 교회와 맺은 새 언약의 신실성도 흔들리게 된다.
4.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언의 정확성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보라…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렘 30:3)
이스라엘 역사 전체가 성경에 미리 예언된대로 성취되었고 성취될 것이다. (16가지 예언 중 13개가 이미 성취)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에 대한 동참이 될 수있다.
5. 예수님의 재림이 이스라엘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마 23:39)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스가랴 12:10)
예수님의 재림에는 두 가지 응답이 필요 :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고,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메시아를 알아보고 회개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그분을 환영할 때까지 다시 오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도가 된다.
6.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라” (슥 12:3)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유대 민족의 메시아 인식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둘러싼 갈등과 압박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는 영적 전쟁의 핵심 지점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슈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있는 것을 안다.
한 사람의 크리스챤으로서 그 무엇보다 성경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불변성,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수님의 재림과의 연결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어떤 신학이나 유명한 신학자, 목사, 교회의 말보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믿고자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이것이 맞는 길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딸 예루살렘을 위해 주야로 울고 계시기에 나도 내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마음과 눈물을 따라, 그리고 신실하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오늘도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Praying Hands가 되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