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22 : ‘바야크헬’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Brad TV)

 

토라포션 22 바야크헬과 페쿠대이의 핵심 내용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

 

 

🕎 토라포션 22  ‘바야크헬’

🕎 토라포션 22 ‘바야크헬’과 ‘페쿠데이’의 주요 내용

  1. 바야크헬‘ (וַיַּקְהֵל)의 의미 : ‘그가 모았다’는 뜻으로, 히브리어 어근 ‘카할’에서 파생되었다. ‘카할’은 공동체, 사회라고 하며 히브리어로 카일라는 교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신 히브리어 표현은 ‘내 케일라를 세우리라’이다. 모임은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2. 장자의 원칙(지난 주 키 티싸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자를 어떻게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축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했다. 그 심정을 잘 헤아려 보라. 내가 키운 암소가 낳은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행위이다. 그 암소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여기시고 그 암소를 축복하시고 그 암소는 더 많은 새끼를 낳게 될 것이다. 또한 밭의 첫 소산을 드리는 것은 십일조와 같은 원칙이며,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또한 로마서 1장 11절은 구원이 먼저 유대인에게, 그다음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질서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장자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존중하고 축복하는 것은 중요하다.

  3. 모세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 :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던 경험으로 인해 그의 얼굴이 빛났다. 이 빛은 평범한 빛이 아닌 거룩한 빛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모세는 빛을 감당할 수 없는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우리가 거하는 모습을 예표한다. 예수님께서 어둠 가운데 오셔서 빛을 비춰주셨고 그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도 빛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이사야 60장에서 어둠이 땅을 덮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고 민족들이 그 앞에 나오고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과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에 수건을 썼다고 설명한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 그 안에 계시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이며,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다. (고후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4.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 : 안식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개념이며 쉼과 기도, 말씀을 읽는 영의 시간이다.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시간이다. 육의 안식이 아닌 영의 안식을 위한 시간이다. 어떤 일도 하지않고 하나님과 사람, 가족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며  영혼와 몸을 쉬게 하는 시간인 것이다.하나님은 안식일의 쉼을 언약의 한 부분이자 영원한 표징으로 삼으셨다. 핵심 히브리어 단어 ‘샤밧שַׁבָּת‘은 안식과 쉼을 뜻하며 ‘샤바톤שַׁבָּתוֹן‘은 구별된 완전한 휴식을 뜻한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속도를 늦추고 주님과 가족, 공동체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쉼을 통해 회복하고 새로워지며 교제안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기를 원하신다. 안식은 우리의 문화와 생각, 영혼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시간이다.

  5. 성막 짓는 일로의 초대 : 하나님은 성막 건축에 모든 백성을 초대하셨으며,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까지 각자가 가진 예물을 기꺼이 가져오라고 하셨다.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며,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각자의 몫, 역할을 담당하여 함께 주님의 집을 짓는 것이다. 네디붓( נְדִיבוּת)은 너그러움, 관대함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넉넉하게 아낌없이 베풀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데 기꺼이, 풍성하게 드렸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
  6. 마음에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 마음의 상태를 말씀하신다. 마음에 감동이 없이 억지로 예물을 드리지 말라. 가난하거나 부유함과 상관없이 자원하는 마음이 없거나 드리는 것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억지로 예물을 드리지 말라. 나다바 루아흐’נָדְבָה רוּחַ ‘는 영이 자원하여 너그럽게 열린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너그러워지고 드리고 나누는 것에 관대해지기를 기도하라.
  7. 여성들도 참여 :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출35:25-26) .. 슬기로운 마음, 지혜로운 마음(하캄 레브 חֲכַם-לֵב)을 가진 여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번 토라포션에는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영어에서 해석하는 ‘자유의지를 드리는’보다 히브리어적인 ‘관대하게’라는 의미에 좀 더 집중해보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자.
  8. 브살렐 : בְּצַלְאֵל의 뜻은 하나님의 그늘(보호) 아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 하캄이 임한다. 브살렐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이 가득하고, 재능과 능력과 지식으로 모든 일을 하였다. 루아흐로 먼저 영적인 삶이 잘 세워진 자에게 재능과 능력, 지식이 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9. 출35:32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의 원어는 라흐쇼브 마흐샤보트(לַחְשֹׁב מַחֲשָׁבוֹת)이며 직역하면 ‘생각을 생각해내다’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주님이 주시는 생각과 마음, 지혜를 생각에 담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생각과 뜻을 심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34절에 브살렐에게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교훈과 지혜를 혼자 간직할 것이 아니라 나누고 확장해야 할 것이다.

 

⏺바야크헬‘ 개인묵상

  • 바야크헬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모이는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를 이루는 성도 개인의 마음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한다. 신앙생활에 관련된 많은 것이 어렸을때부터 생각하고 경험해왔던 그 틀을 깨고 다시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의 물질적 형태와 구조, 그 안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구조와 형식, 서로 교제하는 방식, 교회나 리더의 방향성에 따라 추구하는 것이 다 다른 다양성…본질만 잘 붙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며 그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해보려 하지만..그 본질이라는 것의 정의도 상대적인거 아닌가? 마지막 때에 교회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땅의 교회는 진정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그 통치를 받고 있는가?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끝도 없는 질문과 당장 나의 교회를 봐도 해결될 거 같지 않은 산적한 문제 앞에 실망과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드러나는 온갖 죄악과 타락된 모습에서 교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교회에서의 죄악과 타락은 세상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 죄를 용납하고 타락한 성도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죄와 타락이 가득하여 빛을 잃고 소금의 맛을 잃은 교회는 세상의 죄악을 가속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성도 각 사람의 ‘마음’으로부터의 변화, 말씀이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변화가 없이는 교회도 세상과 구별됨없는 그저 기호를 따라 모인 자들의 동아리, 집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 관대하지 않은 성도들이 빛과 소금처럼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생각을 담은 생각없이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 또한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은연중에 나는 저 바리새인같은 종교인들과 다르다며 착각하며 교만의 탑을 쌓고 있지는 않은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마음을 잘 살피고 성령으로 잘 세워가는 것. 바야크헬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자 도전이다. 

 

 

📢토라포션 21 : 키티사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

 

📢토라포션 22-23 : 바야크헬 + 페쿠데이 강성민 목사님 

 

📌 이 글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Telegram Copy Link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