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라포션 13 쉐모트 (שְׁמוֹת)
- 본문 범위: 출애굽기 1:1~6:1
-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쉐모트)
토라포션 13 쉐모트의 주요 내용
-
‘쉐모트’는 히브리어로 ‘이름들(Names)’을 의미한다. ‘이름들’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노예 상태가 그들의 정체성이나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취소시키지 못했다. 당신의 가족 중에 오늘날 주님을 섬기지 않거나 사탄의 속박 속에 사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 남아 있다는 것과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애굽, 즉 옛 삶에서 나오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
이번 토라포션의 주제가 될 수 있는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엘로힘 쇼메아(אֱלֹהִים שׁוֹמֵעַ),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 구원하신다(זוכר)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압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셨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적들의 거짓말과 교활한 계획으로 인해 노예가 되었는지 첫 장에서 설명한다. 야곱과 그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자유민으로 삶을 시작했으나 갑자기 노예가 되었다. 적들은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상태에서 계속해서 번성하고(Multiplied) 성장하도록 두었다. 노예의 상태, 즉 자유가 없고 생계 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셨고, 그들은 이집트인들보다 훨씬 더 많이 번성했다.
- 노예 상태의 의미와 준비 : 비록 적이 억압하려 해도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강해질 것이다. 노예 상태는 실수가 아니었으며,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큰 능력을 얻게 되며, 이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다. 주님을 신뢰할 때, 나쁜 환경과 어려움조차도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이후의 구속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느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셨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 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서 주님을 찾고, 연합하며,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돌아가 왜 이집트에 들어갔는지, 그들의 운명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
하나님께서 억압과 불의를 모두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억압과 불의를 보시며,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며, 희망이 없어 보이고 상황이 악화될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세상은 성경에 따라 부패한 세상이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승리하게 될 것이다!
- 모세(מֹשֶׁה)의 출생 : 이집트인들은 남자들을 제거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약해지고, 여자들은 자신들이 취할 수 있으며, 결국 민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갓 태어난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하였다. 이는 오늘날 사회에서 남성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유사하며, 교회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의 90%가 여성인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아름답다(Yafa)는 것을 보았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법을 어기기로 결정했다.
- 모세가 보내진 강은 나일강이며, 당시 악어들로 가득 차 있어 아기가 쉽게 삼켜질 수 있는 위험한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은 이집트인들에게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고, 모세는 이집트의 생명의 위협을 피해 오히려 그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나일강에서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
모세의 이름은 건져지다라는 뜻을 가진다. 바로의 궁전에서의 화려한 삶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자기 동족에게 있었으며,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해석된다.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정의감이나 다른 사람을 돕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미리 품고 있는 것일 수 있으므로 자신의 열정에 주목해야 한다.
-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와 목자가 되어 사막에서 양 떼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모세는 평소처럼 기도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갑자기 불타는 떨기나무(Burning Bush/하스네 보에르 הַסְּנֶה בֹּעֵר)를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고통 아래에 계신 것이 아니라 고통 안에 함께 계심을 의미한다. 또한 히브리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도 하다.
-
모세의 응답은 매우 흥미로운데, 영어로는 “Here I am(여기 내가 있나이다)”이지만, 히브리어로는 ‘히네니(הִנֵּנִי)’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소명을 계시하셨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히네니”라고 대답하는 곳은 매우 강력하고 특별한 순간들(아브라함, 야곱, 모세)에 나타난다. ‘히네니’는 단순히 “여기 내가 있나이다”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주님과 함게 하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위해 나를 사용하십시오”라는 의미로, 완전히 헌신된 믿는 자의 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히네니’라고 대답해야 한다.
-
목사님께서는 ‘히네니’를 언급하실 때 성령의 임재를 느끼셨다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고 삶을 새롭게 할 때 강력한 역사가 일어난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우리 또한 그분께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히네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 단어를 특별하고 중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게 하셨으며, 이는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깊고 강력한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며 살게 하소서”가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이름 : 출애굽기 3장 13절: 모세가 하나님께 그분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자신을 계시했던 분임을 밝히시며,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e Lord)”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뜻하는 일반적인 단어는 엘로힘(Elohim) 또는 엘(El)이지만, 이는 이집트의 다른 신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I am who I am” 에서 ‘am’은 의미는 맞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다. 히브리어אֶהְיֶה אֲשֶׁר אֶהְיֶה로는 “나는 내가 될 것이다(I will be who I will be)”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나는 너의 미래이다. 나는 미래에도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쉐모트에 대한 개인묵상
우리는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성도들이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완전한 출애굽을 이룬 자들도 있고, 애굽에서 나왔어도 여전히 애굽이라는 세속의 시스템에 갇혀 육의 것을 쫓으며 좁은 길을 걷는 것에 불평하며 가는 자들도 있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해 광야에서 먹고 살다 그냥 죽는 명목 상의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쉐모트를 묵상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바라본다.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당신의 때에 이루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의 나라 백성으로서 자격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그저 언약대로 이루신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연약하고 어리석은 나 인간은 하루에도 나의 상황이나 바깥의 소식으로 인하여 몇번씩 감정이 오르내린다. 당장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이 좌절하다가도 당장의 희소식에 숨통이 트이며 살 것 같은 세상이라 여긴다. 그 어리석음이 우습다. 고통의 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나약한 나에게 하나님은 ‘히네니’ 할 것을 요구하신다. 아브라함과 야곱, 모세를 향한 부르심에 티끌만큼도 거창할 것 없이 일상에서의 부르심일지라도 각오하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는 그 ‘히네니’이다. 지금 내가 대답해야 할 ‘히네니’는 자기부인의 ‘히네니’이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비롯되는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불편함들..내 뜻대로 되지 않은 괴로움들…믿음보다 앞서는 내 생각들과의 싸움..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당신의 영원하심과 위대하신 이름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저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오늘도 은혜의 보좌앞에 섭니다.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시며 나를 부르신 그 이름의 정체성에 합당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주저없이 ‘히네니’하고 그 대답에 합당한 삶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뤄가게 하소서.
📢토라포션 12 : 바예히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