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라포션 24 ‘바이크라’
- 본문 범위: 레위기 1:1 ~6:7
- 이스라엘 포흐타르 목사의 토라포션(바이크라)
토라포션 24 ‘바이크라’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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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회막에서 부르셨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먼저 인류를 그분께로 가까이 초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모세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가까이 오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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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라 ויקרא : 히브리어로 ‘그가 부르셨다’라는 의미이다. 바이크라의 마지막 글자가 א 알레프로 작게 토라 두루마리에 작게 쓰여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유대인 현자들은 이것이 무엇의 그림자, 곧 모세의 겸손함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동행하시며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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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과의 연결고리 : 요한복음 15장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의 선택이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의 부르심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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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 성막이 세워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공간적 제약없이 어디에서나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성막 안에서 말씀하신다. 성막이 곧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성막은 오헬 모헤드(אֹהֶל מוֹעֵד : Tent of Meeting)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하늘을 반영하여 하나님의 방식으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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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번제) : 동물 전체를 제단에 올려놓고 그 전체를 태우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굴복을 의미한다. 유대 문헌에서는 이 번제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1장9절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을 말한다. 에베소서 5장 2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 다양한 제물과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 수소, 양, 염소, 심지어 새까지 다양한 동물이 제물로 허용되었다. 이는 모든 사람의 경제적 형편이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서 이해하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나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산비둘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집에서 정성껏 키운 동물이 될 수도 있고 형편이 되지 않아 겨우 구할 수 있는 동물을 제물로 드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동물의 종류가 아니라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중심과 얼마나 드릴 준비가 되어 있느냐이다. 탈무드에서는 많이 드리든 적게 드리든 중요한 것은 마음의 지향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사람의 마음을 살피셨다.
- 소제 (감사를 통한 예배와 노동의 열매) : 히브리어 단어 ‘민하מִנְחָה‘는 우리가 드리는 예물, 즉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를 뜻한다. 곡식은 인간의 노동으로 생산된 것이므로, 소제는 노동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십일조나 헌금과도 연결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을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보여드릴 수 있다. 소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드렸으며, 일상생활, 생활의 방식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소금 언약: 레위기 2장 13절은 모든 소재물에 소금을 더하라고 명한다. 소금은 변하지 않고 보존하며,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언약, 신실함, 보존의 상징이었다. 유대교에서는 ‘소금 언약’이라는 문구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또한 마태복음 5장 13절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한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의로움을 보존하도록 부름받았으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 - 화목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하며, 그 어원은 ‘샬롬’이다. 이는 평화, 거룩함,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다른 제사와 달리 화목제의 일부는 예배자가 직접 드렸다. 이는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를 상징하며, 하나님은 백성들을 예배로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그 분 앞에서 함께 식사하도록 초대하신다.
- 속죄제(חַתָּאת 하타트) : 우리가 모르게 지은 죄 조차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희생이 있기 전에는 지은 죄마다 재물을 가져와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을 때마다 희생 제물을 드려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속건제(אָשָׁם) :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제사는 해를 끼치거나 고의로 죄를 졌을 때 드려졌으며, 자백, 희생 제사, 그리고 대상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요건이다. 진정한 회개에는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이 포함되며,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서 삭개오는 자신이 훔친 것을 되돌려주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되는 회복의 길을 상징한다.
- 제사의 본질: 관계 회복과 하나님의 자비,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렇지 못한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여셨다. 제사는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짓는 죄에 대해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꾸실 수 있고 회복하기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자발적인 예배와 흠 없는 제물 : 제사는 자발적으로 드려져야 했으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예배자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음악이나 찬양을 떠올리지만, 하나님께 받고 드릴 준비가 될 때가 예배가 된다. 마음의 지향성을 항상 기억하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짐승은 완벽해야 했으며, 병들거나 다치거나 약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은 찌꺼기가 아니라 최고의 것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므로, 진심으로 드릴 때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 문헌에서는 결함이 있는 동물을 드리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불경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모든 일에 대해 진지하게 임할 수 밖에 없다.
- 제단의 불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받으시는 것을 상징하며, 피어오르는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는 예배를 나타낸다. 피는 항상 언약과 연결되어 있으며, 제단은 생명의 상징으로 덮인 장소가 되었다. 제단은 정의와 자비가 함께 만나는 장소로 여겨졌다. 그리스도의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은 그분을 화목 제물로 세우셨고(롬3:25), 우리는 예수를 통해 영생을 얻게 되었다.
‘바이크라‘ 개인묵상
- 제사의 내용이 대부분인 레위기는 늘 부담스럽다. 많은 제사와 거기에 필요한 제물과 방식. 하나님은 왜 이런 제사들을 원하셨을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사랑하지만 죄로 인해 더럽혀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늘 부딪히기에 죄의 해결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영위해갈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왕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사랑의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용납되지 않는 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 죄의 댓가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알려주시고 싶으셨을 것이다. “마음의 지향점”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만 내 관심, 내 욕심, 내 영광, 내 만족을 항하고 순전한 하나의 마음이 아닌 나뉜 마음으로 빈 껍데기로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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